Short story
밤과 밤 사이
A translator preparing an English anthology of women poets of the Joseon era cannot find a way to carry one pun across (the sijo in this chapter is an original poem written for the course).
Tap a dotted word for its meaning.
Words to know (12)
- 선집 · anthology
- 문집 · collected writings (of a family or scholar)
- 필사되다 · to be copied by hand
- 종장 · closing line of a sijo
- 밤톨 · a single chestnut
- 지새우다 · to stay up all night
- 포개지다 · to be layered, to overlap
- 각주 · footnote
- 반박하다 · to argue back, to refute
- 밤송이 · spiky chestnut burr
- -노라니 · as I was doing (old literary ending)
- 옮긴이 · translator (in a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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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까지 열흘이 남아 있었다. 윤서진은 연희동 작업실 책상 앞에서 같은 시조 한 수를 사흘째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국의 한 출판사가 준비하는 조선 여성 시인 그 마지막 자리에 들어갈 작품이었다. 작가는 청연당 박씨. 태어나고 죽은 해도 확실하지 않고, 남은 작품이라고는 어느 집안 귀퉁이에 시조 일곱 수뿐인 시인이었다. 서진은 십 년 전 지방의 한 고서점에서 그 처음 펼쳤을 때부터, 언젠가 이 사람의 목소리를 바다 건너로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제의 시조는 이랬다. ‘달 밝은 밤이면은 님 생각에 잠 못 들어 / 뒤뜰의 밤나무 아래 떨어진 밤 / 아마도 이 밤 저 밤이 다 님인가 하노라’
초장과 중장은 어렵지 않았다. 달, 밤, 님, 뒤뜰. 영어에도 다 있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이 밤 저 밤’의 밤은 잠 못 드는 밤이면서, 동시에 손바닥 위에 놓인 밤새 님을 그리던 여자가 새벽에 뒤뜰에 나가 밤을 줍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숱한 밤들도, 손에 쥔 이 밤알들도 결국 다 님이라는 것을. 한국어로는 한 글자에 이 겹침이, 영어로 옮기는 순간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두 단어로 쪼개져 버렸다.
서진은 몇 가지 안을 만들어 편집자 마거릿에게 보냈다. 첫째 안은 밤을 어둠의 밤으로만 옮기고 밤나무를 아예 지우는 것이었다. 깔끔했지만 시가 납작해졌다. 둘째 안은 다는 것이었다. 마거릿의 답장은 짧았다. 읽고 웃는 농담은 없어요, 서진. 읽고 우는 시도 없고요.” 서진은 그 문장을 메모지에 적어 모니터 옆에 붙였다. 화가 났는데,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서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청연당 박씨도 이렇게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서진은 결국 새벽 네 시에 작업실을 나와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다. 시월 말이었다. 산책로 옆 밤나무 아래에는 다람쥐가 남기고 간 흩어져 있었다. 서진은 쪼그리고 앉아 벌어진 송이에서 밤 한 톨을 꺼냈다.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피가 한 방울 맺혔다. 그 순간 서진은 이백 년 전의 여자가 무엇을 쥐고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단어가 아니었다. 무게였다. 밤새 쌓인 그리움이 손바닥 위에서 작고 단단한 무게가 되는 것.
작업실로 돌아온 서진은 사전을 덮었다. 그리고 영어로 소리 내어 읽을 때의 호흡부터 다시 셌다. 두 개의 뜻을 한 단어에 담을 수 없다면, 두 개의 단어를 한 행 안에 나란히 세워 서로 울리게 하면 어떨까. 서진은 두 행으로 나누고, 마지막 행을 손바닥을 펴는 동작으로 끝냈다. 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대신, 독자가 그 여자와 함께 밤을 줍게 한 것이다. 겹침은 사라졌지만, 겹침이 남기던 떨림은 남았다. 적어도 서진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마거릿의 답장은 이튿날 아침에 왔다. “이번 것은 필요 없네요. 읽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펴 봤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있는 것 같았어요.” 서진은 메일을 두 번 읽고 노트북을 덮었다. 번역가로 산 이십오 년 동안 그녀가 받은 칭찬 가운데 가장 좋은 칭찬이었다.
그러나 마감 전날, 서진은 원고 맨 끝에 한 쪽을 더 붙였다. 출판사가 요청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녀는 거기에 한국어 원문을 그대로 싣고, 그 아래에 영어로 단 몇 줄을 덧붙였다. 우리말로 옮기면 이런 뜻이었다. ‘이 시에서 밤은 두 번 떨어집니다. 한 번은 하늘에서, 한 번은 나무에서. 제 번역에서는 한 번밖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머지 한 번은 언젠가 이 언어를 배우게 될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둡니다.’
원고를 보내고 나서 서진은 책상 서랍에서 그 밤 한 톨을 꺼냈다. 며칠 사이 껍질이 조금 말라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청연당 박씨의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이백 년을 사이에 둔 두 여자의 밤이, 그렇게 잠시 한자리에 놓였다.
Comprehension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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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y is the last line of the sijo so hard to translate?
2. What was Margaret's objection to a footnote?
3. What did Seojin understand on the hillside at dawn?
4. For whom does she leave the meaning that her translation loses?